해법영어이야기

새로운 영어교육의 방향

Power leader (한길) 2020. 5. 9. 13:43




이제 영어는 사회계급을 나누는 척도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의 결정적 도구로, 우리나라에서 영어는 권력이 되기도 한다. 영어의 의미가 점차 변질되는 것에 대해 교육 현장에서는 소통의 도구로써 제자리를 찾게 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주로 말하기 등 표현력 위주의 교육으로 전환기를 겪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영어교육의 대안을 놓고 갈등 양상도 커지는 상황이다.


새로운 영어교육 방향
우리나라의 영어에 투자하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지난해 말 삼성경제 연구소의‘영어의 경제학’분석 결과에 따르면 영어 사교육비 투자 비용이 15조원에 이른다는 결과를 내놨다. 이는 우리나라 GDP의 1.9%, 전체 교육예산의 47.5%에 해당하는 규모다. 여기에 해외 조기유학 비용 등을 합치면 20조원이 훌쩍 넘는다. 영어에 쏟아 붓는 비용이 교육 예산의 1/3도 넘는 수준이다. 이만하면 영어교육에 온 나라가 어느 정도까지 공을 들이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처럼 막대한 투자에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평가한 한국인의 외국어 구사능력은 61개국 가운데 35위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거기다 ETS(미국 토플출제기관)에 따르면 읽기와 독해 점수는 높은 편이지만 말하기, 쓰기는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독해 능력도 보통 학원에서 찍어주는 대로 외워서 시험을 보기 때문에 해외 대학에 합격해도 실제 사용 능력은 현저히 떨어지는 현상을 보인다고 한다.
이에 토플의 실효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iBT 토플로의 전환이 모색됐다. 기존의 문제은행식이 아닌 한번 출제하면 다시 내지 않는 방식으로 언어의 의사소통 능력 평가에 중점을 뒀다. 토플 시험의 변화후 토익이나 SAT, GRE 등의 시험도 비슷한 형태로 변화됐다. 지난해 말 새롭게 말하기, 쓰기 시험을 도입한 토익 시험에서도 기본적인 영어 소통 능력이 없으면 풀기 힘든 문제로 출제됐다는 평이다.
토플과 토익 시험의 변화는 국내 어학원 시장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전 연령대에 걸쳐 말하기 위주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됐다. 전화영어나 화상영어 등이 주목받지 못하던 교육 방식도 올해부터 큰 관심을 끌고 있다.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환경 교육이나 영어 몰입교육 등도 영어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영어로 일반 과목까지 배우게 되며 영어 노출 시간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ESL 교육이 관심을 받고 있다 해도 영어가 전문적으로 필요치 않다면 각자의 성향이나 목적에 맞는 영어교육을 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영어교육전문가들은“무조건 레벨이 높은 반에 다닌다고 영어가 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라며“어려운 책 1권 붙잡고 있기보다 쉬운 영어책 10권을 소리 내어 읽고 써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고 충고한다.


 

뒤따라가는 영어 공교육
영어교육의 변화 양상에 맞춰 공교육에서도 뒤늦게 대책을 마련하고 변화를 모색 중이다. 교육부에서 최근 발표한 연구 방안은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지적해 온 교사 자질 문제와 부족한 수업시간, 표현력 위주의 평가방식 변화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교육부는‘영어교육 혁신방안’세미나에서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영어교사 양성과정 평가인정제’와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영어능력인증제’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올해부터 초등학교 1, 2학년 영어수업을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수업시간도 점차 늘려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제주 국제자유도시나 경제특구, 외국어 교육특구 내 초.중등학교에서는 수학, 과학 등을 영어로 수업하는 방안도 단계적으로 추진된다.

교육부에서도 꾸준히 제기돼 온 문제점을 받아들여 표현력 위주의 영어교육에 나서고 있지만 현장의 교육 환경은 그리 녹록치 못하다. 영어로 대화하는 수업이 필요하지만 여전히 교사들은 입을 다물고 있고 수업시간도 부족하다.
교육부 관계자는“영어 때문에 해외로 연수나 유학을 나간다고 해서 영어교육을 제대로 받으리란 보장은 없다”고 말하면서 “차라리 학교에서 배우기 힘들다면 국내 어학원의 시스템도 잘 돼 있으니 학원을 알아보는 편이 유학으로 인한 문제점도 줄이고 비용도 낮출 수 있다”고 유학의 대안을 사교육으로 돌리기도 했다. 이미 교육부에서부터 영어교육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시인한 셈이다.

영어교육 시기 언제가 좋을까
대부분의 영어교육전문가들은 사춘기 이전에 영어를 배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는 언어 습득력이 가장 높아지는 시기에 해당한다는 연구 결과도 뒷받침하고 있다.
공병호경영 연구소의 공병호 소장 역시 ‘영어만은 아이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자’의 설명회에서“아이의 영어 교육의 적기는 10세 이전으로 이 시기에 적어도 2년 간 아이를 영어의 바다에 빠뜨려야 한다”며“아이가 영어에 흥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확실한 동기부여 를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부에서도 최근 초등학교 1, 2학년 조기 영어교육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에 우선 초등영어 시행 10년 간의 성과 분석 결과에서‘효과가 있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배운 학생들의 실력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높게 나왔다는 것이다. 또‘자신의 영어 실력이 향상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중학생의 35.7%, 고등학생의 23.3%가‘그렇다’고 답했다.
하지만 일부 교육단체에서는 교육부의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번 조사 결과에서도‘초등학교 영어교육이 수업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고등학생들은‘아니다’(56.3%)라는 대답이‘그렇다’ (18.7%)보다 훨씬 많았다고 지적했다. 중학생들은‘그런 편’(38.4%)이라는 대답이‘그렇지 않다’(32%)는 대답과 비슷했다. 또 영어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은 중학교 1학년을 정점으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내려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교육단체 관계자는“영어교육의 시기를 따지기 전에 영어교육의 내실화가 더 중요하다”며“영어교육 기간을 늘려서 학생들에게 고통을 주기보다 초등 고학년이나 중등 이후에 집중적이고 효율적으로 하는 게 더 낫다”고 주장했다.

 

영어 공용화 논쟁

영어교육의 시기에 대한 논란은 영어 공용화론과 영어 무용론으로도 이어진다. 영어 공용화론은 소설가 복거일 씨를 통해 꾸준히 강조돼 왔다.

영어로 인해 투자비용 등에서 손해 보는 일을 줄이려면 차라리‘지구언어’인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다. 이는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한국어가 없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객들의 비판을 받아야 했다.
이후 영어 공용화에 대한 논쟁은 잠시 잠잠했으나 복 씨는 다시 지난해 초부터 초등 1, 2학년 조기 영어교육을 지지하면서“영어는 외국인들을 상대하는 사람들만 배우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얘기는 비현실적이고 비도덕적”이라는 주장을 폈다. 이유는 외국인들을 상대하는 일자리 보수가 더 나은데 원천적으로 배제를 받을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영어 공용화는 계층간의 불이익도 없앨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우선 경제 특구와 같은 특정지역을 영어 시범지역으로 지정, 영어를 공용어 수준으로 사용하면서 사회 전체적으로는 공용어보다 약한 개념의‘상용어’정도로 정착시킬 것을 제안했다. 영어 투자효과를 높이기 위해 우선 초.중.고교에서 일반 과목을 한국어와 영어로 반복 강의하거나 영어 이야기 발표, 영어 연극 등의 체험 행사도 늘릴 것을 주문했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고안된 간편한 영어,‘ 글로비스(글로벌+잉글리쉬)’를 적극 활용하고 자동 번역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도 방안으로 거론했다. 하지만 영어 공용화에 대해 성급하게 접근한다고 보는 영어교육 전문가도 많다. 영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크게 무리가 없는데 초등 영어교육의 확대와 몰입교육이 바람직한 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영어 무용론을 제기하는 입장에서는“영어에 대해 너무 맹신하고 있으며 필요한 사람만 배우면 된다”고 주장한다.

조기 영어교육에 대한 반응을 비교해보면 양쪽 다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모두 영어교육을 효과적으로 하자는 데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영어 공교육을 바로 잡는 것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영어로 인해 빈부와 도농격차가 크고 사회양극화 현상까지 양산하고 있다. 영어 실력이 계급이 되고 권력이 되는 건 아무래도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영어에‘올인’하려는 교육 인식도 변화가 필요하다. 단지 소통 수단일 뿐인 영어에 사회 전체가 매달리는 모습이 그다지 보기 좋은 현상은 아니다. 영어는 단지 영어일 뿐이다